
홍대에 붙어 있는 국민학교를 나왔다. 내가 국민학교에 다니던 시절은 아직 홍대 광장에 빨간 화살표가 있었고, 광장에 대학생들이 소주병으로 만든 최루탄을 들고 앉아 구호를 외치고 좁은 길 건너에 전경들이 방패를 들고 서서 대치하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데모를 한 번 하고 나면 다음 날 등교길에 아이들이 죄다 눈물을 줄줄 흘리며 교실로 들어왔다. 최루탄 냄새는 지독했다. 어린 우리들은 데모 놀이를 하고 놀다가 선생님께 혼이 나곤 했다. 학부모들은 애들이 별 걸 다 배운다고 재미있어 했던 것 같다. 다행히 그 시절에는 그런 걸로 학교로 찾아와 선생 뺨을 후려치는 부모는 없었다.
당시에 학교 앞에는 서림제과와 리치몬드가 있었다. 둘 다 동네빵집이었고, 주머니 사정 빤한 국민학생에게는 여름이면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파는 서림제과 쪽이 훨씬 좋았다. 여름에 돈이 좀 있으면 서림제과에서 아이스크림을 사서 핥으며 지하철 역까지 걸어갔다. 지하철 역으로 가는 지름길이었던 리치몬드 옆길에는 분식집이 여러 개 늘어서 있었다. 분식집에서는 떡볶이를 팔았다. 친구들과 함께 가끔 떡볶이를 사먹던 때도 있었다. 리치몬드는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는 가게였다.
리치몬드에 한두 번 가보긴 했다. 부모님이 학교에 오실 일이 있을 때에. 거기는 앉을 자리가 있었고, 서림제과보다 비싸 보이는 분위기였다. 무슨 빵을 먹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쨌든 빵집이라는 건 국민학생의 입맛에 다 거기서 거기였으니까.
중고등학교 때에는 홍대 앞에 나올 일이 전혀 없었다. 그쪽 동네까지 갈 일이라는 게 있을 리가 없다. 특수고를 다니지 않는 한 중고등학교는 집에서 버스 두세 정거장 거리에서 끝나니까. 친구들과 논다고 해도 동네에서 놀지, 버스나 지하철로 한 시간씩 걸리는 홍대 앞에 갈 리 만무하다. 게다가 나는 클럽 같은 것이 뭔지도 모르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대학에 들어가서 신촌을 돌아다니기 시작하며 6년 만에 홍대 앞에 다시 오게 되었다. 겨우 6년인데, 홍대 앞은 완전히 변해 있었다. 서림제과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뭔가 다른 가게가 있었다. 분식집이 즐비하던 먹자골목에는 옷가게들이 가득 들어찼다. 홍대 정문 옆쪽으로는 화방들이 사라지고 이상한 가게들이 생겼다. 그리고 사방팔방에 클럽들이 가득 들어찼다. 대학생들과 전경들이 대치하던 그 길 옆으로 음악을 시끄럽게 틀어놓는 가게들이 많아졌고, 클럽데이를 하는 날이면 당시 한국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짧고 딱 붙는 옷을 입은 예쁜 아가씨들이 줄줄이 거리를 메웠다. 신기했고, 낯설었다. 내가 알던 홍대가 아니었다. 내가 알던 그 동네는 조용하고 촌스럽던 곳이었는데.
어쩌면 그것은 어린 아이의 눈높이에서 봤던 홍대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유일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가게가 리치몬드였다. 예전과 비슷한 분위기였지만 연차가 쌓인 리치몬드는 이제 꽤 중견 제과점으로 우뚝 올라서 있었다. 아직은 맛있는 빵이나 케이크가 뭔지 모르던 시절이었으나 리치몬드는 근사해 보였다. 무슨무슨 대회에서 상을 받은 제과제빵의 장인 어쩌고 하는 이력이 붙어 있는 액자를 보면 오오 소리가 절로 나왔다. 하지만 나에게 리치몬드는 그저 국민학생 시절에 본 그 가게였다.
대학을 옮기면서 다시금 신촌/홍대 지역에 나갈 일이 없어졌고, 그렇게 10년 가량이 지나 서른이 넘어서야 다시 홍대 앞에 나오기 시작했다. 10년이 지난 홍대는 또 달라져 있었다. 이제 내가 알던 가게들은 하나도 없었다. 여전히 클럽들은 남아 있지만 예전 같은 분위기는 아니었다. 짧고 딱 붙는 옷을 입은 아가씨들은 너무 많아서 더 이상 대단해 보이지 않았다. 사람은 어마어마하게 늘어났고, 일본식 음식점과 카페들이 길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고, 상수역 부근까지 번화가가 증식했다. 유학을 다녀온 오너 파티셰들이 연 작고 고급스러운 빵집이 여기저기 생겼고, 어느 골목의 어느 빵집이 식사빵은 최고다 같은 이야기가 도는 그런 기묘한 동네가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 여전히 리치몬드가 있었다. 이제 리치몬드는 고급 제과점이었다. 다른 데에서는 세 개씩 담아놓고 만 원에 팔기도 하는 롤케이크가 한 롤에 이만 원 돈 하고, 케이크는 기본이 3만원에 달할 정도로 비싼 가게였다. 가게에 들어가서 빵들을 쭉 둘러보며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나에게 여전히 리치몬드는 국민학교 앞에 있던 그 동네 빵집인데, 동네 빵집 기분으로는 빵을 살 수 없는 가게가 되었구나. 엄청 고급스러워서 그 시절 그 국민학생은 차마 범접할 수도 없는 그런 가게가 되었구나. 서운하고 아쉬우면서도 희미한 자부심은 있었다. 나와 함께 그 시절을 지내온 가게가 지난 이십 여년을 살아남아 유명한 가게가 되었다는 것. 그것은 나름 뿌듯할 만한 일이었으니까.
그렇게 세월이 흘렀는데 2012년, 이제 그 리치몬드가 문을 닫는다고 한다. 아마도 건물주와의 문제가 아닌가 싶지만, 속사정까지는 내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저 어린 시절의 친구, 지금은 성공해서 유명해진 친구가 하루 아침에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기분일 뿐이다. 리치몬드에서 빵을 수없이 사먹은 것도 아니고 자주 간 것도 아니지만, 성공해서 잘산다더라 하는 소식만 간간이 들으며 뿌듯하게 느꼈던 옛 친구가 사라지는 그런 기분.
세상은 변하고 어린 시절 단골집들은 하나 둘 문을 닫고 사라진다. 대학 시절 줄창 모여 요리 한두 개를 시켜놓고 세상을 다 아는 것처럼 떠들어댔던 중국집 홍매도 사라졌고, 중고등학교 때 하루 온종일 붙어앉아 책을 읽곤 했던 서울문고는 반디 앤 루니스라는 이름으로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이 바뀌었다. 거리도 변하고 건물도 변하고 사람도 변한다. 그리고 이제는 리치몬드까지 사라진다.
사라지는 가게들은 추억까지 함께 갖고 가버리는 것만 같다. 부모님과 함께 앉아 케이크 한 조각을 먹던 기억, 친구들과 와르르 떠들며 그 옆을 지나갔던 기억, 그 시절의 그 분식점 골목과 동네, 학교, 친구들. 어렸던 나. 앞으로는 홍대에 나가도 이런 기억을 다시 떠올릴 수 없겠지.
안녕, 리치몬드. 나와 함께 있어주었던 세월 고마워. 널 잊지 않을게.
# by | 2012/01/28 01:20 | 혼잣말 | 트랙백 | 덧글(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