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앙리 할아버지와 나 본것/읽은것

20년쯤 전에 파우스트 연극을 봤었다. 꽤 호평의 공연이었지만 아직 어렸던 터라 정확한 건 기억이 안 나고 공연에 대한 것은 메피스토펠레스로 나왔던 신구 선생님이 목소리가 진짜 쩌렁쩌렁하더라, 그리고 일인다역을 했던 여배우 분이 꽤 인상적이었다는 것만 남아 있다. 

신구 선생님의 연기가 다시 보고 싶어서 연극 앙리 할아버지와 나를 보러 갔다. 연극은 본 지 진짜 오래 됐고 대학로 나가본 지도 오래 되어서 좀 많이 새로웠다. 연극은 좋더라. 역시 바로 눈앞에서 연기를 본다는 건 박력이 넘친다. 배우는 아무나 하는 거 아니라는 걸 새삼 알게 되었다. 

앙리 할아버지와 나는 딱 4인으로 이루어지는 연극이다. 앙리 할아버지, 그 집에 세를 들어온 젊은 대학생 콘스탄스, 앙리 할아버지의 아들과 며느리. 이 4인이 벌이는 좌충우돌과 인생 이야기인데, 생각보다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앙리 할아버지는 신구/이순재 더블 캐스팅, 콘스탄스는 박소담/김슬기 더블 캐스팅이다. 내가 본 건 신구/박소담 페어. 

신구 선생님은 그간 TV에서밖에 볼 일이 없었고, 연세가 많으신 걸 감안해서 이미 기대치는 많이 낮춰둔 편이었다. 현장 공연을 해주시는 것만 해도 감사하다... 한 회 공연하실 때마다 체력치가 쭉쭉 깎일 거 같은데. 뭐 연세가 있으시다 보니 발음이 좀 뭉개지시더라.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힘드신 것 같고. 오히려 조곤조곤 말씀하시는 게 발음이 더 명확해서 알아듣기 좋았고 목소리를 높이시면 발음이 알아듣기 어려워졌다. 그래서 초반엔 좀 힘들었는데 익숙해지니까 나았다.

박소담은 검은 사제들로 인상적이었던 배우이지만 그 이래로 나온 다른 작품은 본 적이 없었다. 아... 완전 귀여웠다. 역할 자체가 귀여운 역이긴 했지만, 외모도 가는 눈이 웃는 상이라 귀여워서 이런 후배 있으면 맨날 둥기둥기 맛난 거 사먹이고 데리고 다닐 거 같다 싶더라. 물론 나에겐 이런 후배 없어... 이런 후배는커녕 나랑 놀아주는 후배 자체가 없어! 으헝헝... 목소리 짜랑짜랑하고 발음 정확하고 호들갑스러운 연기를 생각보다 잘했다. 

아들과 며느리 역을 맡았던 조달환/강지원 배우도 둘 다 연기를 굉장히 능숙하게 잘했다. 조달환은 얼굴을 보며 어라 익숙한데 하다가 나중에 이름 보고 누군지 알았다. 두 사람 다 역할을 능숙하게 잘했고, 발음도 명확했다. 

영화도 마찬가지지만 연극도 대사를 알아들을 수 없으면 짜증이 나는데, 뮤지컬로 가면 가수나 배우, 또는 외국 국적의 배우가 와서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발음으로 공연을 망가뜨리는 경우가 잦았다. (최소한 내가 본 것들은.) 그런데 이 공연은 다들 연기 훌륭하고 발음 정확해서 그게 굉장히 좋았다. 발음은 배우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발음이 정확하지 않은 배우는 싫다. 

스토리는 무난한 내용인데, 한국어로 바꾸며 대사 연출을 굉장히 잘했다. 대사가 찰진 부분이 많고 극 자체도 재미있었다. 보면서 내내 아 다른 페어로도 한 번 보고 싶구나 생각했을 정도라. 앙리 할아버지가 굉장히 꼬장꼬장하고 성질 나쁜 캐릭터인데 신구 선생님은 그보다는 좀 더 상냥하고 인자한 분위기라 이순재 선생님은 어떨까 궁금했다. 하지만 공연이 이번 주로 끝이야... OTL 역시 공연은 빨리 봐야 더 보고 싶으면 더 볼 수 있는 거 같다. 다음엔 일찍 봐야지. ㅠㅠ

공연 끝나고 나오니 배우들 나오는 거 기다리는 관객이 많았는데 애 있는 부부는 일찌감치 퇴각했다. 대학로 멀어... 하지만 오랜만에 나갔더니 굉장히 많이 바뀌고 깨끗해져서 또 와도 되겠다 싶었다. 전에는 호객도 싫고 동네도 좀 많이 허름해서 내키지 않았는데 지금은 훨씬 좋아진 느낌이랄까. 가끔 보러 다니고 싶다. 

하고 싶은 게 많은데 건강 상태가 영 안 좋아서 제대로 하지를 못하고 있다. 좀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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